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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태국,캄보디아(2012~2013년) 90

[앙코르유적#5] 앙코르 톰의 왕궁터, 코끼리 테라스(Terrace Of The Elephants), 문둥왕 테라스(Terrace Of The Leper King)

피미엔나카스 주변이 모두 왕궁터이다. 왕궁 및 부속건물이 있던 자리를 짐작케 하는 주춧돌과 담장, 목욕탕, 성문(고푸라) 몇개만 남아 있을뿐. 학자들은 당시 사람이 주거하는 건물이 대부분 나무로 지어졌기 때문에 전쟁과 세월에 휩쓸려 모두 사라졌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왕궁터에서 비석이 하나 발견됐는데 그 비석은 충성 서약문으로 내용은 여기 모인 어떤 누구라도 왕을 폐하로 모시지 않는다면 왕이 주는 어떠한 형벌도 받을 것이ㅏ. 만약 우리가 이 서약을 지키지 않기 위해 어디론가 숨어버린다면 32가지 지옥에 떨어져 해와 달이 다 할 때까지 있게 될 것이다. 현재까지도 새로운 왕이 즉위하게 되면 이 충성 서약문을 낭송하는 모습을 TV를 통해 중계해준다. 고푸라를 통해 밖으로 나오면 단상같은게 길게 펼쳐져 있..

[앙코르유적#4] 앙코르톰의 피미엔나카스(Phimeanakas)

앙코르 톰 전체는 엄청 크다. 왕궁이 있었던 자리라고 하니 클 수밖에 과거 왕궁이 있던 자리에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유적이다. 피미엔나카스라는 이름은 쁘라삿 피미엔 아카스가 변한 것으로 천상의 낙원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남아 있는 조각도 없고 규모도 작은 편이지만 이곳에 얽힌 사연이 있다. 피미엔나카스는 왕궁안에 위치한 사원으로 앙코르의 역사를 보면 선대왕이 축성한 사원은 대부분 나몰라라 미완성으로 남겨두나 이 사원은 특이하게 라젠드라바르만 2세부터 수리야바르만 1세까지 무려 다섯 명의 왕이 대를 이어가며 축성하였다. 현재는 소실되었으나 꼭대기에는 중앙 탑이 하나 있었던것으로 추측된다. 진랍풍토기에 의하면 왕궁의 침실 앞에도 금으로 된 탑이 하나 있다 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보아 피미엔나카스의 중앙 탑..

[앙코르유적#3] 앙코르 최대의 기대주 앙코르 톰의 바푸온(Baphuon) 사원

바푸온은 오랜 시간 동안 관심을 끌지 못하던 유직이다. 지진한 복원공사로 내부 출입이 금지되어 그다지 볼 것이 없었디 때문이다. 그러나 2011년 10월 드디어 내부가 여행자들에게 전면 공개되었고 지금은 앙코르 톰의 인기 유적 중 한 곳으로 부상 중이다. 이곳의 복원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으로 복원이 완전히 끝나고 나면 앙코르와트를 능가하는 유직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바푸온을 만든 왕은 우다야디티야바르만 2세로 11세기에 잠시 앙코르를 통일했던 수리야바르만 1세의 아들이다. 진랍풍토기에 따르면 앙코르 톰 정중앙에 황금의 탑(바이욘)이 있고 북쪽으로 182미터를 걸어가게 되면 동으로 만들어진 탑이 있다고 기록했는데 그 탑이 바로 바푸온을 가리킨다. 원래는 중앙탑이 있고 그 꼭대기에 구리로 만든..

[앙코르유적#2] 앙코르 톰 최대의 사원 바이욘(Bayon)

바이욘은 멀리서는 웅장하고 회랑을 돌때는 섬세하고 위로 올라서면 가슴이 탁 트이고 웃음이 절로 나오는 사원이다. 이곳은 자야바르만 7세가 자신을 위해 축성한 사원으로 앙코르 톰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원래 이 자리에는 수리야바르만 1세ㅐ 건서뢴 힌두 사원이 있었으나 자야 7세가 그것을 증축하여 불교사원으로 바꾸어싸. 진랍풍토기에 황금빛 사원으로 표혀뇌고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 금칠이 되어 있었다고 추츠괸다. 다른 사원들과 달리 별도의 해자와 성벽이 없는데 이는 앙코르 톰의 성벽과 해자가 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곳은 원래 54개의 사면상이 있어야 하지만 잘못된 복원 작업 때문에 지금은 37개밖에 남아 있지 안하.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전부 해체하고 다시 지어야 하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앙코르유적#1] 앙코르 톰의 첫 관문, 남문(South Gate)

앙코르 톰의 남쪽에 위치한 관문으로 앙코르 톰을 들르는 사람의 대부분이 여기서 앙코르 톰 여행을 시작한다. 해자에 다리가 놓여 있고, 다리를 건너 남문 앞에 다다르면 우뚝 선 높은 문(고푸라) 위에 자비로운 미소로 여행자를 굽어보는 사면상이 있다. 자야바르만 7세 건축물 특유의 사면상, 그리고 앙코르 유적의 기본인 해자와 성벽을 볼 수 있다. 다리 양족으로 각 54개의 신이 있고 뱀인 나가의 몸통을 잡고 있는 조각이 되어 있는데 이는 신화 우유의 바다 휘젓기를 형상화한 것이다. 여기 우유의 바다 휘젓기에 쓰이는 뱀이 바로 나가의 왕인 바수키다. 복원 전에는 머리가 거의 떨어져 있었다. 몇몇은 해자속에서 발견되어 복원하였으나 발견되지 않은 것들은 그대로 두거나 시멘트로 보수하였다. 우유의 바다 휘젓기는 힌..

[씨엠립#2]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군을 보기 위해 툭툭이를 탑시다

캄보디아의 최고 관광지인 씨엠립에서 한 5킬로 정도 떨어져 있다고 한다. 무엇이? 앙코르와트 유적이다. 그래서 씨엠립에서 숙박을 정하고 음식, 쇼핑 그렇게 할건 없지만 그런걸 하고 앙코르와트 유적군으로 가야한다. 가기 위해서는 차가 있어야 한다. 앙코르 와트 유적군이 보통 큰게 아니기 때문에 여기 보고 또 저기 보고 이동을 상당히 많이 해야 해서 이동수단이 있어야 한다. 자전거 타고 가기에는 상당히 힘들다. 단체 관광객의 경우 보통 관광버스를 타고 다녔다. 한국인 단체 관광객의 숫자는 정말 엄청났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갔고 압사라 앙코르 게스트 하우스가 너무나 잘 되어 있었다. 사장님께서 추천 일정, 툭툭이 섭외 등 여행에 필요한 모든것을 기획해 주셨다. 물론 결정은 우리가 하지만 그렇게 하여 우리는 툭..

[씨엠립#1] 씨엠립에서 첫끼니, 그리고 나이트마켓 탐방 열대과일 잭 푸르트

우오~ 드디어 씨엠립에 도착했다. 택시기사 아저씨가 숙소 입구까지 잘 데려다 줬다. 아주 잘 알더군. 압사라 앙코르 게스트 하우스.. 숙소도 1박에 12불 밖에 안하는데 한국인 아저씨가 엄청 좋으시다. 압사라 앙코르 게스트 하우스에 붙어있는 2박 3일 일정을 잡아 가기로 하고 담날 툭툭이 예약해 놓았다. 툭툭이는 하루 대절하는데 12불이다. 짐정리하고 씻고 밥으로 고고~ 씨엠립 시내로 향했다. 그냥 걸어서 갔다. 한 20~30분 정도 걸어서 가면 된다. 캄보디아에 해그름녘에 갔는데 정말 분위기가 좋았다. 음...'한여름밤의 시골'이라고 정란이랑 합의봤다. 냄새가 땅에서 올라오는 흙냄새랑 나무 떼는 냄새 해그름녘의 햇빛의 색온도. 이런것들이 모두 맞아떨어진다. 그리고 게스트하우스 들어갔을때 사람들이 정겹게..

[방콕에서 캄보디아로] 방콕에서 아란, 아란에서 포이벳, 포이벳에서 씨엠립까지~

태국 방콕 홍익여행사에서 일단 국경까지 가는 티켓을 끊었다. 아무것도 모르니 뭐 그렇게 해야지 그런데 그게 또 미니버스라니..에잇~~~ 아주 불편한 미니버스 .. 카지노 버스를 타고 가던지 아무튼 다른 것을 이용하는게 좋지 미니버스는 정말 최악이다. 너무 불편하다.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지역중에 태국쪽 도시는 아란야프라텟 보통 아란이라 부른다. 그렇고 그담에 캄보디아쪽 도시는 포이벳이다. 바로 붙어있다고 보면된다. 그래서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군이 있는 씨엠립까지 가기 위해서는 태국 방콕에서 아란까지 가고 출입국 심사하고, 포이벳으로 넘어가서 입국심사후에 다시 택시를 타고 씨엠립으로 가야한다. 혹시 포이벳에서 차가 없을까? 고민할 필요 없다. 넘어가면 호객꾼이 마구 붙는다. 흥정해서 좀 깍아서 씨엠립까지 가..

[방콕#14] 카오산로드에서 팟타이(Pad Thai)를 먹고, 카오산 뒷길 탐방~

태국 여행의 시작과 끝은 카오산 로드~ ㅋㅋ 칸차나부리 투어를 카오산로드에서 출발하여 다시 여기로 왔다. 그래서 또 가야지. 카오산로드로~ ㅋㅋㅋ 일단은 배가 고프니 팟타이 하나를 먹었다. ㅋㅋ 가격은 추가되는거에 따라 막 다르다. 일단 면을 고르고 메뉴판에 있는거 말해서 달라하면 된다. 이날은 카오산로드 뒤쪽으로 가봤는데 카오산로드보다 조용하고 분위기 있는 골목길이 있었다. 제 2의 카오산로드라 불렀다. 음악소리가 크게 안들리고 좀 조용해서 좋았다. 굵은면, 가는면 있고 색깔도 다르다. 면을 고르고 메뉴판 보고 적당한거 고르고, 우리는 에그 위드 쉬림프 50바트 짜리 먹었다. 동남아는 해산물이 엄청나게 비싸다. 엄청 엄청.. 카오산 로드 뒷길 제 2의 카오산로드 여기도 식당들이 들어차 있고 사람들은 많..

[칸차나부리#4] 칸차나부리 죽음의 철도, 죽음의 열차

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일본군은 미얀마를 포함한 서부아시아를 점령하기 위해 태국에서 미얀마를 잇는 철도를 1942년 9월부터 건설하기 시작했다. 철도의 건설을 위해 동남아 지역에서 전쟁포로가 된 6만명 이상의 연합군 포로가 공사에 투입됐으며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이사, 미얀마를 포함해 약 20만명의 아시아 노동자가 투입됐다. 이후 전쟁에 다급해진 일본은 난코스의 공사를 강행해 1만 6천명의 연합군 포로의 10만명의 노동자를 죽음에 몰아놓으며 16개월만에 철로를 완공시켰다. 그리하여 이 구간의 철로는 죽음의 철도라는 별칭을 얻게 됐다. 죽음의 철도는 지금도 하루 세 차례 칸차나부리에서 남똑까지 완행열차로 운행되며 소요시간은 2시간 30분 가량이다. 기차는 콰이너이강(콰이강다리)를 따라 가며 시원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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