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국내

[전주#9] 발길 닿는 곳마다 이야기가 되는 곳, 전주 한옥마을 도보해설 골목길 투어

☞하쿠나마타타 2026. 6. 4. 20:17

오늘 오전 전주한옥마을 해설을 듣고, 전주 여행 마무리 지을려 한다.

첫날 경기전과 전라감영 이야기를 듣고, 둘째날 전주한옥마을 해설을 들으며 전주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고, 많이 둘러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전주 여행에 아주 만족한다.

전주 도보해설투어: https://tour.jeonju.go.kr/index.jeonju?menuCd=DOM_000000106008000000

전주 도보해설 출발 장소 표시가 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한옥마을 골목길투어를 듣고 마무리 지을 것이다.

경기전 매표소 앞인데 보도블럭에 이 표시는 성벽 표시라고 한다. 오른쪽은 성안, 왼쪽은 성밖)

저 멀리 풍납문부터 성벽으로 연결된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나니 여러가지 이해가 좀 되었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성벽은 허물어지고 폭이 제법 있고, 길이가 있으니 대부분 도로나 길이 되었다는 말도 이해가 갔다.

전주중앙초등학교 옆에 있는 교동미술관

교동미술관 공간 히스토리 - 백양메리야스 BYC 공장이었다고 한다.

교동미술관 (전라북도 제4호)은 사도가 만든 단체가 아니라 개인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사재를 들여 탄생한 공간으로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약 2,500여평의 공장 터로 500여명의 근로자가 종사하던 곳이었습니다.

도시재생 차원에서 그 시절 옛 공장의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자 봉제공장 일부를 원형 그대로 보존하며 내부를 전시관으로 개축하여 2007년 개관하게 되었습니다. 미술관 곳곳에 자리한 재봉틀을 통해 당시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교동미술관 옆 최명희문학관인데 지금은 사정으로 운영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전주부채문화관, 바람이 시작되는 곳-대나무와 종이가 혼인을 하여 자식을 낳으니 그것이 맑은 바람이어라.

두 조각의 대나무를 합쳐 만든 살 : 일반 부채는 대나무 겉면 하나로 부채살을 만들지만 합죽선은 대나무의 겉껍질 부분 두 조각을 서로 마주 보게 붙여서(합죽) 부채살을 만든다 이렇게 하면 부채가 훨씬 단단해지고 대나무 특유의 매끈하고 아름다운 결이 양면에 모두 살아난다

질기고 부드러운 한지 : 단단하게 만든 대나무 부채살 위에 우리나라 전통 종이인 한지를 붙여서 완성한다 한지는 바람을 잘 일으킬 뿐만 아니라 오래 지나도 변하지 않는 매력이 있다

저 쪽 골목길 끝에 최명희 생가가 있었다고 한다.

교동미술관 2관

남천교와 이어지는 길이다. 은행나무길이라 불린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 옆에 물길을 만들어 두어 아이들이 맨발로 들어가기도 한다.

처음에는 물길에 다슬기도 넣고 했다고 한다.

은행나무 길 Ginkgo Tree Avenue

전주에는 향교와 풍남동 골목에 수령이 600년은 족히 넘직한 은행나무가 서 있다. 은행나무는 벌레가 슬지 않는 나무로 관직에 진출할 유생들이 부정에 물들지 말라는 뜻에서 향교에 심었다고 한다. 풍남동 은행나무는 조선의 개국공신 월당 최담선생이 귀향한 후 후진양성을 위해 학당을 세우면서 전주최씨 종대 뜰 안에 심은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풍남동의 은행나무는 조선왕조 500년간 깊은 풍상을 겪으며 조선왕조의 흥망을 지켜본 산역사이며 전주가 호남 유학의 본향임을 상징한다. 그래서 전주 사람들은 정겹고 유서깊은 이름 '은행나무 골목'을 사랑한다.

은행나무 길이란 이름이 붙은 은행나무이다.

엄청나게 큰 은행나무 앞에 얇은 은행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그 은행나무는 종자가 떨어져 싹이 튼 은행나무가 아니라 큰 나무의 뿌리에서 나온 같은 나무라고 한다.

전주최씨 고택 입구

선비에게 길을 묻다 전주 한옥마을에는 선비들이 살았습니다. 효를 위해 입신양명을 버린 월당 최담부터 조선의 마지막 선비로 불리는 간재 전우와 그의 제자인 삼재(금재, 유재, 고재)까지, 특히 일제강점기 이곳 한옥마을은 선비들의 집합소였습니다. 역사의 순간마다 삶의 참 모습을 보여준 이들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선비 체험 길 최씨 종대 -> 오목대 -> 이목대 -> 자만암각서 -> 한벽당 -> 금재 고택터(전주한벽문화관) -> 완판본문화관 -> 강암서예관 -> 양사재 -> 남안재 -> 전주동헌 -> 전주향교

최씨종대 월당 최담 선생 600년 고택(화수각) 월당 최담(月塘 崔霮 1346~1434)은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개국한 공신입니다. 17세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해 벼슬길에 오른 월당은 효심이 지극하여 고향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관직을 버리고 고향 전주로 돌아와 자식의 도리에 충실하였습니다. 그는 예를 중시해 나이가 적은 많은 사람을 만나면 말에서 내려 예의를 갖출 만큼 겸손하였습니다. 이곳에는 월당이 심은 은행나무가 600년 넘게 최씨 종대를 지키고 있습니다.

동락원 이라는 정원이 예쁜 한옥 숙소

안에 보이는 연못이 전주국제영화제를 기념하여 스크린을 뜻한다고 한다.

"생각먹는 고양이 로빈" 이야기...

길고양이 주인공 로와 빈, 그리고 전주한옥마을의 600년 은행나무를 소재로 창작된 김완작가의 작품입니다.

김완 작가의 길고양이 창작 만화로 남 여 주인공 캐릭터인 로 & 빈 이가 전주 한옥마을에 살명서 느끼는 내용이라고... 로: 길 路 / 빈 : 빛날 彬

김완 작가의 작품들이 거리에 걸려져 있다

이런 좁은 골몰길은 찾아찾아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담장 위에 있는 고양이 조형물들

네 박사집이라는 현판을 만들어 붙여 놓았다.

서울대, 과학원, 워싱턴,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곳이다.

부부의 도

서로 가까운 두 사람이 부디 신용을 지킬 것이오 서로 오래 갈수록 더욱 존경할 것이요 서로 은결하여 화평을 세울 것이니라

조선시대부터 전주에서 열려온 우리나라 최고 권위의 국악 경연 대회이자 축제다. '대사습(大師習)'이라는 말은 소리꾼이나 연주자 같은 국악의 명인들이 모여서 서로 실력을 겨루고 대중에게 선보인다는 뜻을 담고 있다.

역사적인 유래 : 조선 숙종 때 마한시대의 민속 무예 대회를 시작으로 영조 때에 이르러 소리꾼들이 창악(판소리)을 경연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일제강점기 때 잠시 중단되었다가 1975년에 다시 부활하여 오늘날까지 매년 전주에서 대사습놀이 대회가 성대하게 열리고 있다.

국악인들의 꿈의 무대 : 국악계에서 가장 권위가 높은 대회로 판소리 명창부에서 장원(1등)을 차지하면 대통령상과 함께 '명창'이라는 최고의 칭호를 얻게 된다. 우리가 잘 아는 수많은 국악 거장들이 바로 이 전주대사습놀이를 통해 이름을 알렸다.

다양한 국악 부문 : 판소리뿐만 아니라 가야금 병창, 기악, 무용, 민요, 시조, 농악 등 전통 예술의 거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종합 국악 축제다.

한옥마을 걷다보면 예쁜 카페 많이 만날 수 있다.

황손의 집 승광재(承光齋)

승광재는 대원군의 증손자이자, 대한제국을 선포(1897년) 하신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직계 손자인 황손 이석님이 사시는 곳이다.

'승광재(承光齋)'는 대한제국 연호인 '광무(光武)'에서 빛 '광(光)' 자와 '뜻을 이어간다'는 이을 '승(承)' 자를 따서 "고종황제의 뜻을 이어가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전주는 조선 왕실의 발상지이자 태조 이성계 장군 선조들의 본향으로써, 2003년 8월에 제34, 35대 김완주 전 시장과 전주시민들의 의지에 따라 황손 이석님을 모셔, 2004년 10월 15일에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3가 42-1번지 이곳 '승광재(承光齋)'에 입주하게 되었다.

'승광재(承光齋)'는 마지막 황손 이석님께서 황실에 대한 전통, 문화, 역사에 대한 강연을 하시는 등 다양하고 특별한 문화공간이다.

이석님은 비둘기집이라는 노래를 부른 가수이기도 하다.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 기앙의 10번째 아들로 1941년 서울 사동궁에서 태어나 어릴 때는 상궁들이 모시는 극진한 대우를 받으며 자랐다.

해방과 6.25 전쟁을 거치고 황실이 해체되면서 그의 삶은 급격한 변화를 맞이했어요. 궁에서 쫓겨난 뒤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고, 생계를 위해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수로 데뷔하게 된다. 이후 월남전에 참전해 부상을 입기도 했고, 미국으로 건너가 육체노동을 하며 외로운 망명 생활을 보내는 등 파란만장한 역사의 굴곡을 온몸으로 버텨냈다.

국내로 돌아와 한때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지만, 조선 왕실의 발상지인 전주시와 시민들의 뜻에 따라 2004년부터 전주 한옥마을 내의 '승광재'에 머무르기 시작했다. 현재는 황실문화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한옥마을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황실의 역사와 전통을 알리는 문화 전도사 역할을 맡고 있다.

저기 거리 끝에 보이는 대문이 이석님이 살고 있는 승광재이다.

여기는 한옥마을에서도 아주 부잣집이라고 한다. 저 담벼락이 1930년대? 만들어진 걸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 집 대문이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마자, 다음 날인 8월 16일 저녁에 전주의 우국지사와 유지들이 이 집(당시 집주인 최한규 선생댁) 사랑방에 긴급하게 모였다.

"이제 해방이 되었으니,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제대로 알리고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이 논의 끝에 밤새 원고를 쓰고 한글 활자를 모아 해방 이튿날인 8월 17일 아침에 발행한 신문이 바로 <건국시보(建國時報)>다.

언론학계에서도 "8·15 해방 후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창간된 최초의 신문은 서울이 아니라 전주의 건국시보였다"라고 기록할 만큼 역사적 가치가 높은 사건이다. 당시 이 집의 아들이었던 소년(훗날 연세대 최정호 교수)이 잉크도 마르지 않은 신문을 받아 들고 전주 시내를 뛰다니며 배달했다고 한다.

이 고택은 당시 전북여객, 방직, 금광 등을 운영하며 엄청난 부를 쌓았던 최한규 씨가 1930년대 무렵 한옥 10채를 매입해서 지은 대저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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