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스페인,포르투갈(26년)

[스페인 바르셀로나#5] 가우디 투어-3(까사 바트요 Casa Batlló, 까사 밀라 Casa Milà)

☞하쿠나마타타 2026. 1. 12. 14:32

[스페인 바르셀로나#5] 가우디 투어-3(까사 바트요 Casa Batlló, 까사 밀라 Casa Milà)

 

까사 바트요 (Casa Batlló) - "뼈로 만든 집"

까사 바트요는 새로 지은 건물이 아니라,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한 건물이다.

만든 이유: 섬유 재벌이었던 주제프 바트요가 당시 바르셀로나에서 유행하던 '가장 아름다운 집 짓기 경쟁'에서 이기고 싶어 가우디에게 의뢰했다.

원래는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지으려 했지만, 가우디가 "뼈대만 남기고 완전히 바꾸자"고 제안하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상 조르디의 전설': 카탈루냐의 수호성인 '상 조르디(Sant Jordi)'가 용을 물리치고 공주를 구했다는 전설이 집 전체에 녹아 있다.

지붕: 용의 등을 형상화한 알록달록한 기와.

테라스: 용에게 희생된 사람들의 해골 모양(발코니).

기둥: 사람의 뼈 모양.

별명: 당시 사람들은 이 기괴한 모습에 충격을 받아 '뼈의 집(Casa dels ossos)'이라 불렀습니다. 하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바다 속을 유영하는 듯한 신비로운 빛과 곡선의 미학을 느낄 수 있다.

까사 밀라 (Casa Milà) - "채석장이라 비난받던 집"

까사 바트요의 성공을 본 사업가 페레 밀라가 가우디에게 의뢰하여 지은 호화 맨션이다.

만든 이유: 밀라는 당시 최고 부자였던 아내와 결혼한 후,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크고 혁신적인 아파트를 짓고자 했다.

무량판 구조: 벽이 건물을 지탱하는 게 아니라 기둥이 지탱하여, 집 내부의 벽을 마음대로 허물고 옮길 수 있는 '자유로운 평면'을 선보였다. (당시로선 엄청난 혁신!)

지하 주차장: 세계 최초로 아파트 내부에 지하 주차장과 엘리베이터 설계를 도입했다.

논란과 별명: 완공 당시 바르셀로나 시민들은 "이게 집이냐, 돌무더기냐"라며 비웃었습니다. 마치 울퉁불퉁한 돌산 같다고 해서 '라 페드레라(La Pedrera, 채석장)'라는 별칭이 붙었는데, 지금은 그 이름이 공식 명칭처럼 사랑받고 있다.

옥상의 굴뚝: 투구 쓴 기사들을 닮은 독특한 굴뚝들은 훗날 영화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 디자인에 영감을 주었다는 설이 유명하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유명한 모더니즘 건축물인 카사 예오 모레라(Casa Lleó Morera)

이 건물은 건축가 루이스 도메네크 이 몬타네르(Lluís Domènech i Montaner)가 설계했으며, 1906년 바르셀로나 최고의 건물상을 수상

까사 바트요(Casa Batlló)가 워낙 유명해서 그렇지 거리에 건물들 모두 멋지다.

이 가로등 아래 벤치 뒤 문을 열어 숯을 채워 넣었다고 한다.

세계 최초의 엉뜨 벤치

바르셀로나의 '모더니즘 루트(Ruta del Modernisme)' 라고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카탈루냐의 황금기를 이끈 건축가들의 작품 120여 개를 연결한 문화 산책로이다.

안토니 가우디를 비롯해 루이스 도메네크 이 몬타네르, 주제프 푸이그 이 카다팔크 등 거장들의 흔적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까사 바트요 Casa Batlló

옆에서 보면 제일 아랫층 위로 파도가 넘실대는 것처럼 보인다.

까사 바트요 Casa Batlló

두번째 층은 박쥐를 형상화한 모습이고, 벽 타일 장식과 해골 모양이 테라스가 정말 눈에 띈다.

콜럼버스가 가지고 온 카카오의 초콜릿 갑부의 집 카사 아마트예르(Casa Amatller),

산업혁명이 가져온 의류 갑부의 집 까사 바트요 Casa Batlló 가 나란히 있다.

카사 밀라(Casa Milà)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한 마지막 개인 주택 건축물이고, 물결치는 듯한 백색 파사드와 해초를 닮은 철제 발코니 난간이 돋보인다.

카사 밀라(Casa Milà)는 건물 규모가 까사 바트요 Casa Batlló 에 비하면 훨씬 크게 보였다.

가우디는 까사 밀라 옥상에 약 4.5m 높이의 거대한 성모 마리아 상을 세우려 했다.

이 건물 전체를 성모 마리아를 위한 거대한 받침대로 설계했던 것이다.

하지만 공사 도중인 1909년, 바르셀로나에서 '비극의 주(Semana Trágica)'라 불리는 대규모 반교회 폭동이 일어난다.

노한 시민들이 성당과 수도원에 불을 지르는 모습을 본 밀라 부부는 겁에 질렸고, 건물이 타겟이 될까 봐 성모 마리아 상 설치를 강력히 반대했지만 가우디는 끝까지 설치를 고집했고, 결국 큰 갈등 끝에 가우디는 공사 중단을 선언하며 현장을 떠나버립니다.

가우디가 떠나자 밀라 부부는 남은 설계비(인건비 포함)를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가우디는 소송을 제기했고, 이 재판은 무려 7년 동안 이어졌다.

결과: 법원은 가우디의 손을 들어주었고, 당시 계약서에 성모 마리아 상을 포함한 초기 설계안이 명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보상금: 밀라 부부는 판결에 따라 가우디에게 105,000 페세타(오늘날 가치로 30~50억, 당시 스페인 일반 노동자의 하루 임금이 약 3~5 페세타 수준)라는 거액을 지급해야 했다. 이 금액을 마련하기 위해 밀라 부부는 까사 밀라를 담보로 대출까지 받아야 했다.

가우디의 선택: 가우디는 이 소송에서 이긴 뒤, "나는 내 빵을 위해 싸운 것이 아니라 내 권리를 위해 싸웠다"며 판결금 전액을 '산 주안 데 데우(San Juan de Dios)' 병원 건립 기금으로 기부해 버린다.

이 소송을 겪으며 가우디는 세속적인 건축주들과 일하는 것에 큰 염증을 느꼈고, 그는 까사 밀라를 마지막으로 일반 주택 건축을 그만두고, 남은 생애 12년을 오직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건설에만 온전히 바치게 된다.

결과적으로 까사 밀라의 소송전은 가우디를 '위대한 성당 건축가'로 완전히 돌아서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까사 밀라 Casa Milà 외벽의 모습인데 이렇게 한땀 한땀 작업할려면... ㅎㅎ

까사 밀라 Casa Milà 임대인이 드나드는 대문

까사 밀라를 마지막으로 이제 구엘공원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본 집.

정식 명칭은 까사 테라다스(Casa Terradas), 별칭 카사 데 레스 푼세스(Casa de les Punxes)는 6개의 원뿔형 탑 때문에 뾰족한 집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섬유 사업가였던 바르토메우 테라다스(Bartomeu Terradas)가 자신의 세 자매(안젤라, 조세파, 로사)를 위해 의뢰한 집으로 주제프 푸이그 이 카다팔치(Josep Puig i Cadafalch)가 설계했다.

1903년에서 1905년 사이에 테라데스 자매 3명을 위해 지어졌으며, 중세 성곽에서 영감을 받은 독특한 외관을 특징이다.

- 2026년 1월 11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까사 바트요 Casa Batlló, 까사 밀라 Casa Milà 에서...

2026.01.12 - [해외/스페인,포르투갈(26년)] - [스페인 바르셀로나#5] 가우디 투어-1 (출발장소 찾아가기) 바르셀로나 대중교통 이용법

2026.01.12 - [해외/스페인,포르투갈(26년)] - [스페인 바르셀로나#5] 가우디 투어-2(사그라다 파밀리아 Sagrada Família)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