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프놈펜#15] 프놈펜 킬링필드 청아익 대량학살 센터(Choeung Ek Genocidal Center)-4(내부관람, 킬링트리, 시내로 이동)
'국가의 발전을 가로막는 자들은 모두 죽여야 한다.'
크메르 루주는 도시가 자본주의의 온상이자 공산주의를 방해하는 원흉이라고 보았는데 그들은 도시민을 인간 개조가 필요한 '신인민'이라고 부르면서 프놈펜을 포함한 모든 도시민들을 농촌에 소개시켜 공산주의 사상을 다시 배우게 하는 작전을 계획했다.
당연히 크메르 루주는 강제 이주 과정에서 중환자, 임산부, 어린이와 노약자도 조금도 배려하지 않아 200미터마다 아이들의 시체가 하나씩 보였을 정도였고 부모들은 아이들을 버리고 갔으며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울부짖었다고 한다. 또 다른 증언에 의하면 가족이 행방불명돼서 그 가족이 돌아올 때까지만 도시의 집에서 있게 해 달라고 부탁하자 크메르 루주는 그렇게 집에 있고 싶다면 죽을 때까지 집에 있으라면서 문에 쇠사슬을 묶은 채로 그 사람을 감금했고 이렇게 감금된 사람은 물도 마시지 못해서 결국 사망했다고 한다.
이렇게 강제로 이주당한 모든 사람들은 정글의 집단농장에 있는 폭 2~4m, 길이 3~6m 정도의 전기와 수도도 없는 오두막으로 강제로 옮겨져 '인민 공사'에서 강제적으로 살아가게 되었으며 1976년 1월부로 캄보디아 국민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인민공사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하루아침에 집과 터전을 잃고 집단 농장에서 살게된 모든 국민들은 새벽 4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한 차례의 휴식 시간(아침 10시~낮 1시)을 빼면 10시간에 달하는 강제 노동에 동원되었는데, 특히 '새 사람'들은 오후 7시부터 밤 10시까지 추가적인 야간 노동을 해야 해서 총 13시간 동안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가장 고강도의 노동을 해야만 했다.
이러한 무자비한 정책으로 농촌의 노동력은 어느 때보다 많았지만 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기근에 시달렸다. 그리고 원래 크메르 루주는 1인당 하루 배급량을 570g 정도로 약속했으나 실제 배급량은 많으면 500g 정도였고 배급량이 250g에 불과한 지역도 있었으며, 심한 경우에는 340g짜리 깡통의 절반 정도인 약 180g 정도만 배급되는 경우까지 있었다고 한다.
폴 포트 치하에서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부모님, 큰언니, 여동생을 잃은 캄보디아계 미국인 여성 인권 운동가 로웅 웅(Loung Ung, 1970~)의 증언에 따르면 독이 든 음식을 먹고 죽은 남편의 살을 너무 배고팠던 나머지 자기의 아이들과 나눠 먹은 한 여성이 독에 중독되어 아이들과 같이 목숨을 잃어 한 가족이 몰살되는 참혹한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폴 포트는 살기 위해 인육까지 먹어야 한 사람들이 적발되면 목까지 땅에 파묻어 죽을 때까지 내버려 둔 후 죽으면 효수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경고로 삼게 했다.
게다가 크메르 루주는 식량과 물물교환을 하는 것을 반역 행위로 간주해 식량과 물물교환을 하다가 걸린 사람은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면서 관련된 모든 사람의 이름을 털어놓아야 했다. 물론 식량을 기르는 밭들은 무장한 군인들이 지키며 주민들이 식량을 몰래 가져가는 것을 막았으며 심지어 여자들이 밭에서 식량을 훔치다 걸리면 그 군인들은 걸린 여자들이 아무리 어려도 봐주지 않고 강간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학살 수법도 참혹하기 그지없었는데 크메르 루주는 인간을 살육하는데만 쓰잘데기없이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인류가 탄생한 이래 그 이전에는 없었고, 그 후에도 없을 엽기적이고 피비린내나는 학살 방식을 선사했다.
- 나무위키에서
캄보디아 프놈펜 킬링필드 청아익 대량학살 센터(Choeung Ek Genocidal Center)
1. 입장료 6달러+한국어 오디오 가이드 6달러(아이들은 받지 않았는데 그 기준을 모르겠다. 오디오 가이드는 꼭 하는게 좋고, 기기 하나에 헤드셋 2개 연결할 수 있고, 헤드셋은 더 달라고 하면 무료로 준다.)
2. 그리 넓지 않은 곳이라 많이 걸을 필요가 없고, 대부분 나무 그늘이라 더위에 지치지 않는다.
3. 오디오 가이드 들으며 천천히 가면 2시간 정도 생각하면 된다.
4. 프놈펜 시내로 돌아갈 툭툭이는 정문에 아주 많으니 걱정 안해도 된다.
여기 유해 발굴지는 사람들의 주목을 더 받는 곳인데
이유는 여자들과 아이들의 유해가 많이 발굴된 곳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킬링트리라 불리는 나무이다.
어린 아기들의 다리를 붙잡고 나무에 머리를 내리쳐 죽였다고 한다.
나무에서 머리뼈, 뇌, 머리카락등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크메르 루주 정권 당시 뚜엉슬렝 교도소 소장이었던 사람이
자신의 죄를 부인하다가 이 나무에 와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데크길로 연결되어 있고,
발굴된 치아와 뼈가 전시되어 있다.
스피커를 달아 선동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사람들을 죽였다고 한다.
부처님이 이 나무 아래에서 열반에 든 보리수나무라고 한다.
다시 위령탑으로 돌아오고, 오디오 가이드에서 위령탑에 올라갈 때 신발을 벗고 올라가라고 이야기 해 준다.
위령탑에 전시된 유골들.
사람이 자행한 일이라 믿기 어렵다.
추모의 연꽃
리예, 리안이도 연꽃 한송이씩 구입해서 추모했다.
말로 할 수 없을 일이 캄보디아에서 일어났다.
위령탑을 등지고 밖으로 나오면 왼쪽에 있는 곳이다.
사진 자료와 설명 자료가 있다.
리예 몸도 안좋고 해서 다시 호텔로 돌아가 쉬기로 했다.
툭툭이는 좀 좁은데
약간 더 비싼 리모큐를 불렀다.
올 때는 툭툭이 20400리엘(5.1달러)
갈 때는 리모큐 23200리엘(5.8달러)
자리도 넓고, 사방이 트여 있어 훨씬 시원하고, 시야도 좋다.
리안이는 오다가 잠이 들었다.
- 2024년 1월 7일 캄보디아 프놈펜 킬링필드 청아익 대량학살 센터(Choeung Ek Genocidal 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