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스페인,포르투갈(26년)

[스페인 세비야#16] 세비야 알카사르(Alcázar of Seville)-2

☞하쿠나마타타 2026. 1. 21. 00:49

[스페인 세비야#16] 세비야 알카사르(Alcázar of Seville)-2

 

알카사르(Alcázar)는 아랍어에서 유래한 스페인어로, '요새', '성', 또는 '궁전'을 뜻하는 일반 명사

 스페인에는 여러 알카사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세비야 알카사르(Alcázar of Seville)를 포함해 코르도바, 톨레도, 세고비아 등에 있는 유명한 성이나 궁전 단지를 가리킨다.세비야 알카사르는 유럽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왕궁으로, 오늘날에도 스페인 왕실이 세비야 방문 시 공식 거처로 사용하고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원래 10세기 이슬람 칼리프 시대에 요새로 건설되었고, 이후 13세기 기독교 세력이 세비야를 탈환한 후, 역대 왕들에 의해 증축과 개축이 거듭되었다.

특히 카스티야의 페드로 1세 왕은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에서 영감을 받아 최고의 이슬람 장인들을 고용해 새로운 궁전을 지었다.

이슬람,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이 혼합되어 독특한 건축적 걸작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이슬람과 기독교 문화가 융합된 무데하르 양식의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세비야 알카사르 입장권은 한국에서 미리 예약했다.

2025.12.13 - [해외/스페인,포르투갈(26년)] - 세비야 알카사르 예약(공식 홈페이지)

세비야 알카사르에서도 투어라이브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해서 잘 활용했다.

 

 

(계약관) 제독의 방

루벤스(Rubens)의 태피스트리 작품인 콘스탄티노플 건국(The Founding of Constantinople)

작품은 비잔티움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1세 황제가 신의 계시를 받아 콘스탄티노플을 건설하는 신화적인 장면을 묘사한다.

루벤스는 이 태피스트리 시리즈의 밑그림(카툰) 디자인을 담당했으며, 여러 공방에서 직조되었다.

왼쪽의 여인은 인판타 루이사 페르디난다, 오른쪽 남성은 앙투안 도를레앙, 몽팡시에 공작

프랑스 국왕 루이 필리프와 그의 아내 양시칠리의 마리아 아말리아의 막내 아들 앙투안 도를레앙은 아버지로부터 몽팡시에 공작이라는 칭호를 부여받았다. 그리고 그는 평생 야심 가득한 삶을 살았다.

루이 필리프는 아들인 몽팡시에 공작 앙투안을 에스파냐의 인판타(스페인 용어로 왕위 계승 서열 2위)였던 루이사 페르디난다와 결혼시키게 된다. 루이사 페르디난다는 에스파냐 국왕 페르난도 7세의 둘째딸로, 그녀의 언니는 바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에스파냐 군주가 되는 이사벨 2세이다.

사실 루이 필리프는 에스파냐 왕위를 자신의 가문 사람이 잇길 바래서 아들을 이사벨 여왕과 결혼시키길 바랬지만, 에스파냐 왕가의 복잡한 사정으로 이사벨 여왕은 친가쪽 사촌과 결혼하게된다. 그리고 루이 필리프의 막내아들을 이사벨의 동생과 결혼시키게 된다. 사실 이사벨 2세의 남편은 동성애자라 이사벨 여왕이 후계자를 낳을 수 없게 될 것이라 여겼고, 그 때문에 루이사 페르난다의 후손들이 에스파냐 왕위를 잇게 될 것이라 추정했다. 그리고 앙투안 역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이사벨 2세는 여러 아이들을 낳았다.)

앙투안은 결혼 후 에스파냐 왕위계승 후보자의 남편으로 에스파냐에서 살았으며 부인과의 사이에서 여러 자녀를 낳았다. 하지만 앙투안은 에스파냐 국왕이 되겠다는 야망이 가득했다고 한다.

복잡한 에스파냐 정치 상황 때문에 결국 이사벨 2세가 왕위에서 물러나고 에스파냐의회는 국왕을 새로운 인물로 선출하려 했다. 이때 당연히 에스파냐 왕가에서는 이를 반대했다. 하지만 앙투안은 자신이 에스파냐 국왕이 되길 원했다고 한다. 결국 이사벨 2세의 사촌이자 시동생이었던 세비야 공작 엔리케는 화가 나서 앙투안과 결투를 했고, 그 결과 엔리케가 결투 후 사망하게 되었으며 에스파냐 왕가내에서 앙투안에 대해서 매우 적대적으로 여기게 되었다.

결국 앙투안은 국왕이 되지 못했고, 오랜 망명생활을 해야 했지만 다시 에스파냐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이사벨 2세의 아들인 알폰소 12세가 즉위하면서 그의 딸이었던 마리아 데 라스 메르세데스가 왕비가 되기 때문이다. 알폰소 12세는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하는 사촌과 결혼하길 고집했고 결국 결혼하게 되었다.(마리아 데 라스 메르세데스는 그리 오래 살지 못했다.) 이후 앙투안은 에스파냐에서 여러가지 공적 의무를 수행하며 살았다.

스페인의 화가 비르힐리오 마토니가 1887년에 그린 유화 <성 페르난도 3세의 임종>

이 그림은 1252년 5월 30일 세비야에서 서거한 카스티야의 왕 페르난도 3세(Fernando III, 성 페르난도)의 마지막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그림 속에서 왕은 두 명의 성직자 부축을 받으며 대주교 앞에서 십자 형태로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왕의 발치 쿠션 위에는 왕관, 홀, 그리고 그의 유명한 검 '로베라(Lobera)'가 놓여 있다.

왼쪽에 있는 초상화는 프랑스 국왕이었던 루이 필리프 1세이고, 오른쪽은 스페인의 왕이었던 페르난도 7세(Ferdinand VII of Spain, 1784~1833 재위) 의 초상화

루이 필리프 1세는 1830년 헌장에 따라 프랑스 국왕이 되었으며, 프랑스 혁명 후 왕정복고 시기에 왕위에 올랐다.

왼쪽 루이 필리프 1세의 초상화는 프랑스 화가 프란츠 사버 빈터할터(Franz Xaver Winterhalter)의 원본을 바탕으로 제작된 것이고, 오른쪽 페르난도 7세의 초상화는 19세기에 카를로스 블랑코(Carlos Blanco)가 그린 것이다.

(계약관) 공청회장 천정

(계약관) 공청회장

1531년에서 1536년 사이 제작 알레호 페르난데스(Alejo Fernández)의 항해사의 성모 (La Virgen de los Navegantes)

그림은 자비의 성모(Virgin of Mercy) 도상학을 따르며, 성모 마리아가 자신의 망토로 신자들을 보호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보호받는 인물 중에는 카를 5세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아메리고 베스푸치 등 스페인의 유명한 탐험가와 왕족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스페인 제국이 기독교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파하라는 성경의 예언을 성취했다는 개념을 강화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카락(Carrack)선 모형

카락선 15세기 지중해에서 개발된 최초의 유럽형 원양 항해 범선을 말한다.

대항해 시대의 주요 탐험가들이 사용했으며, 콜럼버스의 산타마리아호도 카락 계열 선박이다.

이 배 모형은 아메리카 대륙 발견 500주년 기념 행사(1992년)를 위해 제작되었다.

페드로 왕의 궁전 입구

페드로 1세가 14세기에 건설한 이 궁전은 이슬람 장인들에 의해 지어졌으며, 이로 인해 아라비아 왕들의 침실 역시 무데하르 양식(이슬람과 기독교 양식의 혼합)의 정수를 보여준다.

페드로 왕의 궁전 로비 벽면 장식

벽면 상단의 아랍어 비문에는 "우리 군주 술탄 돈 페드로에게 영광 있으라, 신께서 그를 도우시기를"이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페드로 왕의 궁전 로비 왼쪽 길

(페드로 왕의 궁전) 소녀들의 안뜰

스페인어로 'Patio de las Doncellas'라고 하며, '처녀(소녀)들의 안뜰'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한 전설에 따르면 무어 왕에게 해마다 100명의 처녀를 공물로 바쳤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ㄷ.

 

중앙에는 길고 얕은 연못이 있고, 양쪽에는 오목하게 들어간 정원이 있으며, 아치형의 아름다운 회랑이 둘러싸고 있다.

(페드로 왕의 궁전) 카를로스 5세 지붕의 방 천정

16세기에 제작된 화려한 격자형 목재 천장입니다. 세바스티안 데 세고비아(Sebastian de Segovia)가 1541~1543년에 만든 이 천장은 75개의 팔각형 패널로 구성되어 있으며, 꽃무늬 디자인과 흉상으로 장식되어 있다.

(페드로 왕의 궁전) 카를로스 5세 지붕의 방

(페드로 왕의 궁전) 왕의 침실 천정

(페드로 왕의 궁전) 왕의 침실

아라베스크 문양: 이슬람교는 우상 숭배를 금지하므로,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 대신 복잡하고 정교한 기하학적 문양이나 식물 문양(아라베스크)으로 벽과 천장을 장식했다.

모카라베: 특히 천장과 벽이 만나는 모서리나 아치형 구조물에 종유석 모양으로 촘촘히 박힌 '모카라베'라는 독창적인 장식 기법이 사용되었다.(여기는 없다.)

이슬람 양식의 말발굽 아치와 복잡하고 섬세한 아라베스크 석고 장식이 기독교 건축 요소와 결합된 무데하르 양식이다.

 

- 2026년 1월 20일 스페인 세비야 알카사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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