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체코,오스트리아,슬로바키아,헝가리(2012년)

[프라하#30] 구시가광장(구시청사, 천문시계, 틴성당)

☞하쿠나마타타 2013. 8. 16. 00:13

 한국에서 여행방송들 많이 보고 준비해 가서 프라하의 구시가 광장은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 근데 진짜 느낀거지만 티비로 100번 보면 모하겠노~ 직접 와서 1번 보는것만 못한데~ 정말 프라하는 우리가 여행하면서 구석 구석 다 돌아봤다. 정말로 많이 많이~ ㅎㅎ

구시가 광장은 프라하 최고의 관광지로 손꼽힌다. 다양한 행사도 많이 열리고, 장사꾼도 많다. 틴 대성당의 큰 첨탑을 둘러싸고 있는 네개의 작은 탑들은 광장이 한때 처형장으로 쓰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구시가 광장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엔 잠시지만 참혹한 전장이기도 했다.

 

 

 80미터 높이의 2개의 첨탑과 보헤미아 고딕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크고 작은 첨탑으로 이루어진 틴 성당. 프라하 성 안의 성 비투스 대성당 다음으로 프라하에서 성스러운 장소로 여겨진다. 쌍둥이 첨탑이 정말 신비하고 멋지다. 관광을 위한 내부관람은 불가능하며 미사시간이나 공연이 있을때만 일반인에게 개방한다. 틴 대성당에 덴마크 출신으로 루돌프 2세의 왕실 천문학자였던 티코 브라헤(Ticho Brach, 1546~1601)가 매장되어 있다.

 얀 후스(1372~1415)는 체코에서 가장 존경받는 위인으로 15세기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 보다 1세기나 앞서 종교개혁을 주장한 인물로 유명하다. 15세기 그는 신학자로 카를 대학 총장과 성직자를 역임하면서 특정 계층만 이해할 수 있게 라틴어로 진행하던 예배를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체코어로 설고했고, 체코어 철자법 개정과 체코어 찬송가 보급에도 힘썼다. 뿐만 아니라 당시 부패한 가톨릭 교황과 성직자, 교회의 권위 등을 부정하고 면죄부 판매에 대해 비난했다. 이로 인해 1411년 교황으로부터 파문당한 후 1415년 독일 콘스탄츠에서 이단으로 몰려 화형당한다. 그의 죽음은 체코 전역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고 이때부터 신교(후스파)와 구교(가톨릭 세력과 합스부르크 가)간의 오랜 종교전쟁이 시작된다. 전쟁 결과 300여년에 걸친 합스부르크가의 오랜 식민통치를 받게 되었다.

얀 후스 동상은 1903년에 라디슬라프 샬로운이 제작 얀후스 서거 500주년이 되는 1915년에 완성해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중앙에 얀후스가 서 있고 한쪽에는 그를 추종하는 후스파들과 식민지배시대에 추방당한 신교도, 체코 부활을 상징하는 어머니와 아이상으로 이루어진 아르누보 양식의 동상이다.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서 소원의 벽 이라고 한다.

 

 이 70미터짜리 건물은 1338년에 세워진 구시청사(Old Town Hall)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나치 군대는 프라하를 끝까지 사수하려고 고군분투했는데 그 과정에서 구시청사의 양쪽 부속 건물은 파괴되었다. 이곳 결혼식장은 프라하 현지인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다고 한다. 우리가 여행중에도 결혼하는 장면을 봤다.

 

 

 

 구시청사

 구시청사 벽면에 달려 있는 천문시계이다. 천문시계는 1490년 하누슈라는 시계공이 만들었는데 전설에 의하면 천문시계가 완성되자 프라하 시민들은 하누슈가 다른곳에 이와 같은 시계를 다시 설치할 수 없도록 그의 눈을 멀게 햇다고 한다. 이에 분노한 하누슈는 자신의 손을 넣어 시계의 작동을 멈추게 했다고 한다. 실제로 16세기 얀 타보르스키가 완성할 때까지 시계는 100년 동안 멈춰 있었다고 한다. 이 벽시계는 매시 정각이면 퍼포먼스를 펼치는데 이를 구경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온다. 해골 모양의 인형이 밧줄을 잡아당겨 모래시계를 뒤집고 2개의 창문이 열리면서 예수와 12사도가 차례차례 지나간다. 너무 짧고 기대와 들어왔던 것들에 비해서 단순해서 좀 허무하다. 천문시계는 천동설에 기초한 2개의 원판에 위쪽은 시간과 천체의 움직임을 나타내고 아래는 12개월을 상징하는 달력이다.

 

길가다가 카페 카프카가 있어서... 여기가 카프카가 살던 집이라 했던가? 아닌가? 황금소로 말고 구시가 광장 근처에 있다고 했는데...

 

- 2012년 8월 1일 체코 프라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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