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국내

[제주#8] 너븐숭이 4.3기념관(43사건 관련 미술작품, 해설 있음)

☞하쿠나마타타 2026. 6. 2. 06:13

 

오늘은 비가 오고, 성산에서 한림 쪽으로 숙소도 옮겨야 하는 날이다.

가는 길에 너븐숭이 4.3 기념관을 들렀다.

작년 10월 추석 연휴 때 43평화공원에 들러서 해설을 들었지만 그새 또 기억에서 많이 사라졌다.

너븐숭이 4.3 기념관은 아주 작은 곳인데 43사건 관련된 미술작품과 43당시 할머니, 할아버지의 증언을 들을 수 있다.

너븐숭이는 제주 말로 넓은 바위 들판이라는 뜻이다.

제주 조천읍 북촌리에서 43사건 중 무장대의 기습으로 군인 2명이 사망하는데, 그 일에 대한 보복으로 북촌리 주민들을 학살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기념관이다.

1949년 1월 17일 당시 북촌초등학교에 마을 주민을 강제로 집결시켜, 마을 전체에 불지르고, 위협 사격을 했으며 주민들을 수십 명 씩 나누어 학교 인근의 너븐숭이 밭이나 당팟 등으로 끌고 가 집단 사살했다.

이날 하루에만 약 400명에 달하는 무고한 주민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이 일은 1978년 현기영 작가의 소설 '순이 삼촌' 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제주 43사건과 연관된 사건이 여수.순천 10.19사건이다.

1948년 10월 19일 전라남도 여수에 주둔하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 군인들이 제주 43사건 진압을 위한 출동 명령을 거부하며 일으킨 사건으로, "동포를 학살할 수 없다."는 명분으로 제주 출동을 거부하고, 순식간에 여수와 순천을 점렴하고, 인근 구례, 보성, 고흥 등 전남 동부 지역으로 세력을 넓힌다.

이렇게 점령한 지역에서 인민위원회가 설치되고, 경찰과 우익 인사들에 대한 처형이 이루어지는데, 정부는 이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대규모 진압군을 투입한다.

정부군은 일주일 만에 여수와 순천을 탈환하는데, 이 과정에서 반란군 뿐 아니라 협력자로 의심받는 수많은 민간인이 문초를 당하거나 즉결 처형되었다.

진압을 피한 제14연대 소속 군인들은 지리산과 백운산 등으로 들어가 빨치산 활동을 이어간다.

너븐숭이 43기념관

들어가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글과 그림으로 설명을 해 놓았다.

1949년 1월 17일 당시의 상황을 잘 묘사해 놓았다.

43사건이 마무리 된 시점인지 모르겠는데, 아이들은 들판에서 해골을 차고 놀았다는 증언도 있다.

군.경.공무원 가족과 그 사람들의 친인척을 제외했다는 설명도 있고,

긴 장대로 사람을 밀어 내고(학살 대상자) 있는 모습도 보인다.

8분 정도 43사건 관련 영상을 잠시 보았다.

너븐숭이 43기념관의 해설사 분께서 너무 친절하게 해설도 잘 해 주셔서 43사건이 다시 한 번 리마인드 되었다.

군인에 의해 죽은 엄마의 젖을 빨고 있는 아이 모습

이쪽에서 본 밭의 모습은 이렇게 까마귀만 날고 있는데,

저쪽에서 본 밭의 모습은 이런 모습이다.

이 날 우연히 들렀는데 어떤 분이 영혼을 달래는 살풀이 공연을 하셨다.

그 뒤를 일본인 관광객이 뒤따랐다.

원래 야외에서 할려했는데 비때문에 실내에서 한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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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05 - [여행/국내] - [제주#3] 제주43평화공원, 평화기념관 방문 및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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