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베트남,캄보디아(23~24년)

[캄보디아 시엠립#21] 앙코르(Angkor) 유적지 탐방 프레아 칸(Preah Khan) 사원

☞하쿠나마타타 2024. 1. 12. 22:00

[캄보디아 시엠립#21] 앙코르(Angkor) 유적지 탐방 쁘레아 칸(Preah Khan) 사원

 

정확한 때는 알 수 없으나 앙코르 톰을 완성시키고, 국교를 불교로 바꿨던 자야바르만 7세(1181~1220)가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만든 사원으로 처음부터 불교 양식으로 지었으나 힌두 양식을 접목시켜 두 양식이 공존한다.

바이욘을 건설한 자야 바르만 7세는 현재 캄보디아 사람들에게서 크메르 왕국의 왕들 중에서 수리야 바르만 2세와 함께 가장 위대한 왕으로 존경받는 왕이다. 앙코르 와트 건설자인 수리야 바르만 2세(참파를 식민지화 했다)가 죽자 전국은 혼란에 빠지고, 점차 주변국의 세력은 강해진다. 결국 1177년 참파(베트남)에게 져서 왕은 살해 되고 수도는 빼앗기고, 백성들의 삶은 도탄에 빠지게 된다. 이때 자야 바르만 7세가 등장해서 빼앗겼던 수도 앙코르 톰을 1181년 톤레샵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다시 되찾는다. 대외적으로는 앙코르 왕국의 국가적 위기 상황을 극복하였으나, 대내적으로는 반대 세력인 귀족과 브라만 사제들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전통적인 데바 라자 의식을 하지 않고, 불교식의 부다 라자를 통해 왕위에 오른다. 아버지가 자신이 왕이 된 후 나중에 추서된 왕(다수 견해)이라서 왕위 정통성이 약하였고, 서민들이 믿던 불교를 믿으면서 상류 계급과의 마찰이 있었다. 그래서 많은 사원 건축을 통해서 왕위 정통성을 확보하려고 하였고, 도로를 정비하고, 전국에 병원과 숙박 시설을 짓고, 관개 수로를 확충하는 등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국내외 최고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사원 건설과 정복 전쟁에 많은 비용이 들어갔고, 자야 바르만 7세 사후에 주변 국가의 성장으로 크메르 제국은 서서히 힘을 잃어가게 된다.

프레아 칸이 있는 이 지역은 자야 바르만 7세가 참파(베트남)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했던 곳이다. 그래서 자야 바르만 7세는 이 지역을 자야스리(신성한 승리)라고 하고, 이곳에 여러 건축물을 지었다. 아버지를 모신 프레아 칸도 이 곳에 만들었다. 인공 저수지인 자야타타카(북 바라이)를 만든 후 수상 사원인 니악 뽀안(병원)을 만들었고, 따 솜을 만들었다. 이 지역에서 남쪽에 있는 어머니를 모신 불교 사원 따 프롬도 자야 바르만 7세의 작품이다.

사원 내부에서 검이 발견되었기에 '우수하다, 더 높다' 등의 뜻을 가진 프레아(Preah)를 사용해 '성스러운 검'이라는 뜻이다.

프레아 칸은 신성한 칼이란 뜻이다. 프레아가 신성하다는 뜻이고, 칸은 칼을 말한다. 프레아 칸에 크메르를 지키는 신성한 칼이 보관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사원 이름이 이 전설 때문에 붙여졌으나, 현재는 어느 곳에 보관하였는지, 또한 진실인지도 알 수가 없다.

프레아 칸(Preah Khan) 은 앙코르톰(Angkor Thom)의 북문을 빠져 나오면 있고,

바로 옆에 니악포안(Neak Poan)사원도 있어 같이 둘러보면 될 듯하다.

프레아 칸(Preah Khan) 서쪽 입구

프레아 칸의 링가를 보면 이전 시대와는 달리 변형된 형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링가 밑 부분은 가루다가 4면에서 받치고 있고, 그 위로 4면에 불상이 새겨져 있었으나, 모두 훼손되고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시바 신을 모시는 사원에 링가와 요니가 있게 된 전설이 재미있다. 옛날 옛적에 수행자들이 세상에 산적한 고민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을 때, 시바 신이 지나가다가 이를 보고는 장난삼아 젊은 남자로 변신하고는 수행자들의 부인들을 유혹해서는 같이 춤추고 밤새 놀았다고 한다. 그 모습을 수행자들이 보고는 화가 나서 그 젊은 남자에게 성기가 잘리는 주문을 걸었으나, 시바 신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바 신의 화만 부추겨서 시바 신은 스스로 성기를 자르고는 사라진다. 이후 세상의 모든 생물들의 생식이 중단되어 버린다. 수행자들이 삭티를 찾아가 이 문제를 의논하자, 삭티는 이 일이 시바 신이 자신의 성기를 자른 것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는 삭티 본인이 직접 여자의 성기 모양으로 변신해서 시바 신을 유혹하게 된다. 시바 신이 유혹에 넘어가 다시 자신의 성기를 붙이자, 모든 생물들의 생식도 다시 시작되었다. 수행자들은 시바 신이 젊은 남자로 변신한 것을 알아채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는 앞으로는 시바 신의 사원임을 알 수 있도록 사원 안에 생식의 상징인 링가와 요니를 모시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앙코르 톰과 같이 해자를 건너는 다리 양 옆에는 우유바다 휘젓기로 되어 있다.

해자를 따라 동서 800m x 남북 700m의 외벽이 설치되어 있다. 중앙 성소가 있는 내벽은 동서 200m x 남북 175m 이다.

돌과 돌을 짜맞추어 튼튼하게 쌓기 위한 용도

돌에 구멍이 엄청나게 많은데 

이건 짜맞추기 위한 용도도 있지만

돌의 이동, 잡기 편하게 하기 위한 여러 목적이 있을 것이라 한다.

프레아 칸의 중앙 성소 제일 중앙이다. 앙코르 사원에서는 볼 수 없던 스투파가 놓여 있다. 스투파는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는 사리탑이다. 자야 바르만 7세 때에는 관음보살상이 있었다고 추정되고, 16세기 프레아 칸이 소승 불교 사원이 되면서 스투파가 놓이게 되었다.

나무로 인해 사원이 무너지는 것을 막고자 나무를 잘라내었다.

프레아 칸의 외벽을 따라 가루다가 양 발로 나가의 몸통을 꽉 잡고 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높이 5m의 가루다 상을 50m 간격으로 총 3km 둘레의 외벽에 72개를 만들었다. 나가 위에 가루다가 올라타거나 나가보다 가루다를 더 중요하게 부조한 것은 자야 바르만 7세 때의 건축적 특징이다.

프레아 칸의 외벽은 라테라이트로 튼튼하게 만들었으며, 외벽 위의 불상 부조들은 모두 훼손되었다. 외벽은 라테라이트이나, 가루다 상은 사암으로 만들었다.

라테라이트(laterit)는 열대 지방에 분포하는 적갈색의 흙이다. 라테라이트는 열대 우림의 고온 다습한 환경때문에 습기가 있을때는 부드럽지만, 건조한 환경에 노출되면 토양의 유기물이 제거되면서 매우 단단해진다. 화학 반응으로 철분이 산화되면서 붉은 색을 띤다. 앙코르 유적에서는 라테라이트 벽돌을 사용하여 담벼락을 만들기도 하였다. 앙코르 유적이 오랫동안 비바람에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건물 내부에 라테라이트로 전체적 형태를 잡은 다음, 겉 부분만 사암으로 아름답게 장식하였기 때문이다.

자야 바르만 7세이후 불교에서 힌두교로 종교가 바뀌는 과정에서 불교 탄압이 있었고, 이 때 불상이 훼손 된 것으로 보고 있다.

프레아 칸(Preah Khan) 북쪽 입구

프레아 칸(Preah Khan) 바로 옆에 있는 니악뽀안(Neak Poan)으로 이동했다.

 

- 2024년 캄보디아 시엠립 프레아 칸(Preah Khan)사원에서...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