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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2] 제주 김만덕기념관(해설정보,은광연세 뜻)과 제주 동자복 방문

☞하쿠나마타타 2026. 6. 1. 19:56

배에서 광양 분, 어른신 2분과 따님 1분을 만나 너무 많이 먹어서 점심은 생략하고,

제주항 근처에 있는 김만덕기념관을 방문했다.

김만덕기념관 주차장은 기념관과 약간 떨어져 있었는데, 주차하고 5~10분 걸어갔다.

해설사분이 3층에 상주하고 계셔서 해설도 듣고,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셨는데 제주에 대해 뭐든지 물어보라고 하셔서 약간의 토크도 나누었다.

해설사 할머니께서 김만덕기념관 근처의 사진 전시관과 동자복도 가보라고 하셔서 둘러보았다.

김만덕에 대한 큰 내용은 없지만 그 정신과 행동은 아무나 하기 힘든 것이다.

김만덕기념관이 생각보다 엄청 크고 웅장했다.

김만덕 1739년(영조8년)~1812년(순조12년)

1795년(정조19년) 제주도에 극심한 흉년이 들어 수많은 백성이 굶어 죽을 위기에 처다.

이때 그녀는 평생 모은 전 재산을 내놓아 육지에서 곡식 500섬을 사들여 이를 굶주린 제주 도민들에게 나누어 주어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

당시 임금이었던 정조는 이 소식을 듣고 크게 감동하여 그녀의 소원을 물었고 김만덕은 금강산을 구경하고 궁궐을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답했다.(이게 정말 그러고 싶어서 그랬는지.. 아님 어차피 안 될 꺼 그냥 막 질러본 건지...)

이에 정조는 정말로 허락을 하고, 그 소원을 이루었다고 한다.

임금을 만나기 위한 명분으로 정3품 당상관에 해당하는 벼슬을 받았다고...

김만덕은 양인 출신이었는데 12세에 고아가 되면서 기녀의 집으로 가 자연스레 천인이 된다.

천인에서 양인으로 신분을 바꾼 대단한 여성이기도 하다.

김만덕의 객주가 왼쪽 제일 위의 일반적인 물산객주라고 하셨다.

김만덕은 객주에서 뭍에서 오는 쌀, 소금, 천을 사서 제주도로 공급하고, 제주의 물품들을 육지로 보냈다고 한다.

제주 해산물도 제주의 물품이었지만 말총으로 만드는 갓이 제주 특산물이이었다. 갓을 아래와 위를 반제조 하여 통영으로 보내면 통영에서 완제품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제주도에서 전복이라 부르는 전복의 크기는 상상초월이었다.

은광연세

은광연세

김만덕이 세상을 떠난 지 약 30여 년 후, 제주도로 유배를 온 추사 김정희가 그녀의 높은 덕망과 선행을 전해 듣고 감동하여 그 후손들을 격려하기 위해 이 글씨를 써주었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의 김만덕의 선행을 기리며 그녀의 후손들에게 써준 글귀로...

  • 은(恩): 은혜
  • 광(光):
  • 연(衍): 넘치다, 퍼지다
  • 세(世): 세상, 세대

의미: "은혜의 빛이 온 세상(혹은 대대로)에 가득하다." 김만덕이 베푼 숭고한 자선과 박애 정신이 후세에까지 길이 빛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저 건물이 사진 갤러리인데, 들어가니 아주 반갑게 맞아주시고 설명도 해주셨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사진가셨는데, 아버지가 찍은 40~50년 전 사진의 장소에 찾아가 사진을 찍어 두 장을 나란히 아래 위로 둔 사진을 준비중이셨다.

동자복

예전부터 제주 성안의 동쪽에서 성을 지켜주는 수호신 역할을 했다고 한다.

고려시대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는 만수사란 절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것이라고...

복을 주는 신이란 뜻에서 복신미륵, 자복신으로도 불렸고, 동쪽의 미륵이란 의미로 동미륵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어르신처럼 친근하게 큰어른이라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서쪽에는 서자복이 있다고 한다.

동자복 옆에 있는 비석은 단기 4286년에 세운 비석으로 서기로 환산하면 1953년이다.

김만덕기념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산지로 7

-2026년 5월 1일 제주시 건입동 김만덕기념관, 동자복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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